안녕하세요. 오늘은 을미사변에 대해 간단하게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할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한 번 알아볼까요?
을미사변을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 하자면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갑오개혁의 역사를 먼저 읽어보시고 을미사변을 읽어보시고 이해하시면 더 재밌으실 것 같습니다.
2021.06.17 - [재밌는 한국사] - 한국인이라면 알아야 할 갑오개혁
명성황후 민비-1851~1895
명성황후는 희대의 요물인가, 아니면 조선의 뛰어난 정치가 인가?
을미사변 배경
2021.06.02 - [재밌는 한국사] - 아관파천 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9세기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 였습니다. 조선의 주변 국가들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혈안이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하고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 등이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압박에 못이겨 요동반도를 반납하게 되고, 명성황후는 세력이 커진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렇게 친일세력을 한반도에서 내쫓으려고 했던거죠.
일본은 그런 명성황후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일본은 암살 계획을 세우고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를 사변하게 됩니다.
명성황후 시해 모의 편지 증거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3개월 전 일본 야마카타 아리토모 총리의 편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모의하고 있다는 증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노우에 가오후가 계획하고, 이토 히로부미가 승인하고, 미우라 고로가 실행한 시해 입니다. 이 세 사람은 어릴때부터 함께 공부하며 커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명성황후 암살 당일
1895년 10월 8일 일본군 수배대 600여명과 가객 56명, 조선 병력 800여명을 데리고 궁궐을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일본군이 왕실을 수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궁궐을 들어가기 어렵지 않았다) 일본군은 고종와 왕세자를 위협하여 명성황후의 거처를 알아냈고 왕비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궁녀들과 함께 모조리 죽입니다. 일을 끝내고 왕비가 실종 된 것으로 꾸미려고 동쪽 녹산으로 시신을 옮겨 모조리 불태웁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한국인도 다수 있었다는 사실... 친일파 이두황, 이진호, 우범선 등은 명성황후 시해에 적극 가담한 인물들 입니다.
조선 국모의 심장을 관통한 칼 : 히젠도
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는 명성황후를 찌른 칼을 봉납해 놓도 '이 칼은 조선의 왕비를 베었다,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불쾌한 일입니다. 명성황후의 시해 암호가 '여우 사냥'이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먹먹하네요... 절대 잊혀지면 안되는 역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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