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동안 두 유럽의 강대국 인 영국 (잉글랜드)과 프랑스는 100년을 싸웠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프랑스에 있지만 영국의 통제하에있는 Flanders(플랑드르)라는 지방이있었습니다.
플랑드르는 벨기에, 프랑스 및 네덜란드에 걸쳐있는 지역으로 양모를 사용하여 옷을 만드는 양모 산업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지이기도한데요, 그것은 영국에 의해 경제적으로 통제되고 프랑스에 의해 정치적으로 통제됩니다. 영국은 플랑드르를 중심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동시에 프랑스는 이곳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문제에 대해 나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의회는 에드워드 3 세를 무시하고 필립 6 세를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필립 6 세는 왕좌에 올라 1337 년에 플랑드르를 공격하고 프랑스 영토에있는 프랑스 땅을 점령했습니다. 이에 화가난 에드워드 3 세는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백년 전쟁의 시작입니다. 영국인이 프랑스에 상륙 한 후, 그들은 1346 년에 Cresci라는 지역에서 프랑스와 싸웠습니다. 영국인은 프랑스 인보다 적었지만 대포와 장거리 활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프랑스는 3년 뒤 칼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져서 그 지역을 영국에 빼앗겼어요. 그런데 이때 온 유럽에 흑사병(쥐벼룩이 옮기는 전염병)이 퍼지는 바람에 전쟁이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을 죽음에 이르게 했어요.
흑사병이 물러간 뒤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은 계속되었어요. 그동안 두 나라의 살림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반란까지 일어났지요. 이렇게 되자 두 나라는 다시 전쟁을 멈추었답니다.
1415 년 영국과 프랑스가 다시 싸우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 귀족들은 부르고뉴와 아르 마냐 케로 나뉘어 싸우고있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헨리 5 세와 부르고뉴는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해 힘을 합쳤어요. 그는 1420 년 프랑스 군을 격파하고 "삼국 조약"에 서명하여 프랑스 왕좌를 물려받을 권리를 얻었습니다.
2 년 후,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헨리 5 세와 샤를 6 세가 사망했습니다. 잉글랜드 왕이 된 헨리 6 세는“삼국 조약”에 따라 프랑스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샤를 6 세의 아들 인 샤를 7 세는 Armagaks(아르마냐크파)의 지원으로 "삼국 조약"을 무효로 선언했습니다. 그 후 프랑스 북부를 점령 한 영국군은 샤를 7 세가 통치하는 프랑스 남부를 공격하고 프랑스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Charles VII는 파리에서 Orleans(오를레앙)로 도망 쳤습니다. 영국인은 오를레앙을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백년 전쟁의 결과와 잔다르크에 대해 자세하게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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